[렛츠리뷰] 마음의 해부학 research

광복절 특사를 발표합니다.







일단 나는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걱정이 많았다. 심리학과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편견 중의 하나가
'심리학과 다녀? 그럼 사람들 심리를 잘 파악하겠네?' 라는 거다.
물론 인간의 심리를 파악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을 읽어봐' 요따구 헛소리를 하면 심리학과 다니는 사람들한테 욕을 먹기 십상이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도 '심리학과 학생이니까 사람들 대하는 건 잘 하겠네?' 라는 소릴 들었는데,
정말이지 뭘 모르는 말씀.
심리학과는 심리학을 배우지 사교술을 배우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심리학은 오히려 말랑말랑한 말장난이 아니라 엄격한 데이터와 인과관계 증명을 토대로 하는 과학에 가깝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비슷한 지점이었다.
일단 '마음의 해부학'이라는 제목부터가 설득의 심리학. 무슨무슨 심리학 류의 짝퉁 심리학 도서 같은 냄새를 풍겼고
[마음을 이해하면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진다!]는 광고멘트 역시 무슨 자기조력서 같은 느낌이라서,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화가 났다.
그런데 저자가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일단 읽어나 보자 하는 반 오기 같은 심정으로 렛츠리뷰에 신청을 했고
그 오기가 통했는지 -.- 당첨이 되었다.
막상 받은 뒤에는 게으른 성격 탓에 바로 읽지 못해서 리뷰도 못 올리고 이제서야 올리게 됐지만...






일단 내 입장부터 설명하자면 나는 심리학과 학부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심리학에 대해 좀 더 알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학부생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교류분석이라는 학파는 임상심리 계열이기 때문에
아직 그쪽 계열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이 관점에 대해 이해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토대로 몇자 적어보자면.


현재 심리학에는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교정하는 여러가지 관점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관점들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일단 내가 배운걸 토대로 보면 사람들이 흔히 아는 행동분석(행동교정치료에서 많이 쓰임)이 있고
생물심리학(뇌를 주로 연구. 과학의 성향이 더 강한 쪽)이 있고 정신분석(프로이트. 융 등)이 있고...
그리고 여기에서 다루는 교류분석이 있다.
심리학이 뭔가 애매모호하고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 것은 정신분석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그건 과학적인 데이터보다는 과학적인 직감에 더 의존하고 있는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증거가 없다. 이렇다면 이런거고 저렇다면 저런것이다.
'저 사람은 구강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라고 해봤자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자기 말을 증명하지 못하고, 그 말을 부정하는 사람도 자기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
정신분석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고 과학적 직감 또한 대단했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데이터 부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 대단한 발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욕을 먹고 쇠퇴해 갔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심리학과에서는 정신분석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임상 쪽에서는 여전히 많이 사용하지만.
정신분석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나 또한 어떨 때는 '와 진짜 그럴싸한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진짜 뭔 개소리냐'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교류분석은 정신분석과 비슷한 게 많은 관점인데, 일단 3가지 구조로 사람의 심리구조를 조직화 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신분석의 경우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로 나뉜다)
또한 실제로 카운셀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데이터를 토대로 하여 창시했다는 점에서도
정신분석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교류분석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분석처럼 애매모호하고 증명불가능한 욕구나 본능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류분석은 기본적으로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기억은 뇌에 저장되어 있고 인간은 현재의 어떤 시점에서 과거에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온다(loading).
이러한 데이터의 개념이 교류분석의 중심이 되는 부모자아(P), 어른자아(A), 아이자아(C)를 가능하게 한다.
부모자아는 우리가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들었던 각종 원리와 원칙이며 말 그대로 '부모스러운' 자아다.
자신의 기본 원칙을 고수하며 상대방을 훈계하려 들고 고집을 꺾지 않는다.
아이자아는 우리가 어린시절에 외부의 수많은 자극들에 반응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주 요소로 한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 당시의 감정이 그대로 재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자아는? 아이도 부모도 아닌 어른이란 뭘까?
어른자아는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아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곳이라기보다 분석을 주로 담당한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 그 자체, 부모자아로부터 로딩된 데이터, 아이자아로부터 로딩된 데이터 모두를 분석하고
이러한 데이터들이 얼마나 타당하고 믿을만한지를 판단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P, A, C 가 있다.
그러나 어른자아가 부모자아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고 (그럴 때 생겨나는 것이 '편견'.)
어른자아가 아이자아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생겨나는 것이 '망상'.)
세 가지 자아가 모두 독립적으로 기능할 때, 특히 어른자아가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완벽하게 기능할 때
그 사람은 자기긍정-타인긍정(I'm OK - You're OK. 이 책의 원래 제목과 같다)의 상태에 이른 이상적인 개인으로서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말처럼 그렇게 쉬울 수가 있나. -.-
이건 말 그대로 이상적인 개인일 뿐이지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자아가 독립적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내가 소통하고 있는 상대방의 자아와도 제대로 교류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류'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대화다.
대화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트러블이 일어나고 결국은 심각한 문제까지도 불러일으킨다는 건 흔히들 아는 사실.
교류분석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좀 더 파고드는 관점이다.







이 책은 사실 '그 남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무슨 심리일까?' 내지는 '직장 상사의 심리는 어떻게 파악하지?' 따위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자기조력서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제목을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잘못 지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하여튼간에 제목으로 어필해봤자 내용이 흥미위주가 아닌데 결국은 원점 아닌가?)
가벼운 심리학 도서를 원하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당장 다시 내려놓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나 역시 교류분석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싶어 잠시 머리가 띵했으니까.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나면 자신의 평소 대화 스타일과 행동의 스타일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보다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뭔가가 바뀌진 않는다. 머릿속으로 알기만 할 뿐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건 아는 게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어쩌구..하는 책처럼 행동지침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친절한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도는 될 수 있다.



교류분석은 (내가 알기론) 비교적 역사가 짧은 관점이고 이 책은 교류분석 학자가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교류분석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으므로.
'모든 상황에 다 들어맞는' 이론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좋은 이론이 아니라 멍청한 이론이다.
(정신분석이 욕을 먹는건 종종 그 때문이기도 하다)
교류분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은 분명 있을 것이다. 난 아직 딱히 생각나는 게 없지만, 존재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정말로.
하지만 사람들이 대화에 실패함으로써 겪는 여러가지 불화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 창시된
하나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어떤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의미를 가진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건 재미로 보는 책이라기보다 (물론 흥미롭고 재미있긴 하다. 좀 다른 의미로)
오히려 임상심리학 입문서에 가깝다. 저자가 어려운 용어 사용을 싫어하기 때문에 교양서적답게 쉽게 쓰여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는 마시란 말씀. 처음에도 말했듯 심리학은 과학에 더 가깝다.
그 간단한 사실만 인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이건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교양도서다.
남자친구랑 너무 자주 싸우는 여자도, 엄마랑 자주 싸우는 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제목이 다르게 붙여졌더라면 (원제를 좀 더 잘 살렸더라면) 훨씬 좋은 책이 되었겠지만...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cocoajunk.egloos.com/tb/1975024 [도움말]

덧글

  • 정지영 2008/08/27 22:07 # 삭제 답글

    좋은글이라 퍼가려고 하는데 만일 내키지않으시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즉시 삭제할게요~
  • 키에 2008/08/28 13:39 #

    아니에요~ 어디로 퍼가는지 알려주시고 퍼가신 다음에 출처만 명확하게 밝혀주시면 상관없습니다^^
  • 규태 2008/09/02 00:02 # 삭제 답글

    원초아가 id 고 자아가 ego 아니냐?
    나도 이거 읽어보고 싶던건데; 아무래도 제목이 저모양인건 역시 판매를 위한 전략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어 ㅋ
  • 키에 2008/09/02 01:20 #

    엥! 그러네. 정신분석은 너무 헷갈려.. 암튼 읽어봐. 빌려주랴? 재밌어.
  • abc 2008/09/02 08:54 # 삭제 답글

    와우~ 리뷰 재밌게 보고 갑니다 ^^
  • 백돼지 2008/12/09 15:52 # 삭제 답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이 책을 읽다 이해가 힘들어서 참고 하고자 들렀다가 펌. 합니다.
  • 키에 2008/12/20 03:55 # 답글

    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 POP 2009/12/13 20:59 # 삭제 답글

    잘보고 갑니다~ ^^
덧글 입력 영역


메모장

MENU
사진
psyche
스크랩
연구
기타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