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의 품격. 그리고... scrap




아니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난 왜 이제야 보았나!
사실 한창 일본에서 방영중일 때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소위 '잘나가는 메이저 문화'에 대한 묘한 반항심리가 작동하여...
'니네가 그렇게 유명해? 흥 난 안본다'
하고 1년을 묵혀두었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궁금한 것이,
만약 취업이나 진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학교 일을 하느라,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 작년 재작년에 이걸 봤다면
그 때도 이렇게 재밌게 볼 수 있었을까?
글쎄올시다.







INTRO

영구불멸이라 생각되었던 종신고용. 
(1986 노동자 파견법 시행. 파견대상업무는 한정적)
연공서열 등 일본의 고용형태는 (1986 노동자 파견법 시행. 파견대상업무는 한정적)
빈사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1991~ 버블 붕괴)
오래된 불황으로 기업은 스스로를 슬림화 하기 위해
(1997~98 대형은행의 파산 속출)
노동력의 아웃소싱화를 진행, 그 결과 (1999 파견법 개정. 일반사무파견, 원칙상 자유화)
비 정규 고용자, 특히 파견이라 불리는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식하게 되었다
현재, 파견인구 300만명. (2000 대졸 취업내정률, 사상최저)
그러나 급료는 시급제로 보너스 없음. 교통비는 원칙적으로 자가부담
  (2004 개정 파견법 시행. 파견대상업무, 제조업에도 확대)
3개월마다 계약 재검토. 그 환경은 불안정하고 가혹하다
그런 가시나무길을 듬직하게 걸어가는 파견들. (2005 파견시장규모, 4조엔 돌파)




이 드라마는 그 중에서도 이 여자의 이야기다.




오오마에 하루코.
이름도 잘 지었다. 매번 '오마에!(너 이자식)'라고 할 때마다
'오오마에 하루코입니다!' 하고 정정하면서 사람 열을 꽉꽉 채운다 -.-

밤참을 먹으면서 잠시동안 같이 이 드라마를 봤던 언니는
어떻게 이런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확실히 우리나라 같으면 훨씬 더 우울하고 착잡하면 착잡했지
이런 식의 드라마가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런 식의 드라마란:
1. 우울한 일상, 삭막한 현실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
2.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괴인(내지는 괴짜) 캐릭터
3. 범인들과의 좌충우돌
4. 범인과 주인공의 상호발전 내지는 성장
5. 교훈
6. 감동

이런 식의 수순을 밟는 전형적인 일드를 말한다.
일드 중에도 물론 다양한 장르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일드는 이런 식의 전개를 가진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일드를 보면서 가볍고 황당하다고 욕을 하지만
사실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나라 '내조의 여왕'이나 '신입사원' 같은 드라마들과
이 드라마가 차지하는 위치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거라는 사실이다.
원래 일본 사람들 자체가 극적이고 희화화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라별 정서가 달라서 그렇지
일드에도 나름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것이다.
가령 진지함의 스케일이 우리나라는 100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50?
전체적인 사이즈는 작지만 그것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진지한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구몬 밀렸다고 담배피는 거나 대학생들이 F 떴다고 담배피는 거나
그들 각자에게는 심각함의 정도가 동등한 것처럼.
그리고 사실 내가 보기엔 가볍기로 치자면 미드도 만만찮다.
미드만큼 시시껄렁한 개그로 웃기는 드라마들도 흔치 않은데...-.-
맨날 고민하는 소재라고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누구랑 잤네 안잤네 데이트를 했네 못했네
이런 문제고 말이지..



아무튼간에.
다들 잘나가는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취직하여 당당하게 첫발을 내딛고 싶은
88만원 세대들이 즐비한 이 시대에
'파견(직)의 품격'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2007년의 일본도 지금의 우리나라만큼이나 꽤나 사태가 심각했던 모양인데 (사실 잘은 모름)
그런 시기에 이런 드라마를 내놓다니 저 방송국 참 센스가 대단하다.

너에게 쓸모없다 말하는 사회를 욕하기 전에 스스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라!
라는 나의 지론과 통하는 면이 있는 드라마라서 재밌게 보고 있다.

대기업에 열심히 원서를 쓰고, 열심히 스펙을 쌓는 사람들이 들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이런 관점도 필요하다.
세상엔 정말 대기업밖에 없는가?

언젠가 어떤 선배가 말했다.
우리 정도의 학벌이면 중소기업에서 '왜 굳이 여기 오셨죠? 시험삼아 써 보신 건가요?' 하는 말을 듣는다고.
그정도로 중소기업에 가면 대접을 받는 학벌이라고. (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왜 굳이 상대적으로 취직이 잘 될 중소기업에 안 가고 굳이 대기업에 목을 매야 하나.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언젠가 한 선배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다들 대기업에 못 가서 안달인거에요?'라고 묻는 나에게 한 선배가 말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무너지기가 쉽고, IMF 위기 때 그걸 겪었던 세대니까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업에 들어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다행히 IMF때 별다른 탈 없이 그 시기를 보낸 가정환경 덕분에
내가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하고 사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진짜 먹고 살 것이 걱정되는 사람들은 스펙 쌓을 정신조차도 없다.
그렇지 않을까?
당장 내일 먹을 밥이 걱정이라서 꼭두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하는데
토익이 무슨 소용이고 자격증이 무슨 소용이람?
대기업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수소문해서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해야 하고
그게 안 되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데
대기업에 떨어져서 7전8기로 도전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과연 절박하다 말할 만한가....하는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힘들지 않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절박함'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라고 묻고 싶다.

당장 오늘 밥 한끼 사먹을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해본 적이 있는지.
집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물로 배를 채워본 적이 있는지.
옷을 사야 하는데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없어 이번달도 패스~ 해본 적이 있는지.
토익공부를 하면서 그 토익시험 응시료 걱정을 해본 적이 있는지.
해외봉사를 가면서 그 비행기값 걱정을 해본 적이 있는지.

진짜 밑바닥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안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다.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지만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는다.
절대평가로는 택도 없지. 인간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데 -.-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파견직도 물론 종류가 여러질이니 일반적 파견직에 대한 편견이 있는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정사원들의 우월의식은 여전히 불편하고
그런 불편한 시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파견직 스스로의 태도도 불편하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가치는 나의 직위나 위치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파견직이면 어떻고 알바면 어떠며 비정규직이면 뭐 어떤가.
난 오히려 내 이름을 안 부르고 '알바'라고 부르는 정사원 분들에게
알바생다운 철딱서니없음과 불성실함으로 보답해 드렸다.
그 분들이 '어리고 미숙한 단기알바생'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성실함을 보였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기에 그분들은 사회 물을 먹을 대로 먹은 분들이셔서....
그런 기대는 애시당초 하지 않는 것 같아 나도 그대로 해 드렸다. -.-

오오마에 하루코가 자기를 '파견씨'라고 부르는 이노우에인가 뭐시기에게
절대 주임님이라고 안 부르고 '정사원씨'라고 부르는 것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프리랜서도 비정규직이고 백수, 무직인데
왜 파견직이나 비정규직 사람들은 대부분 정규직에게 무시당하고
심지어 그런 자신의 처지를 당연하게 여기는지?
오히려 자유자재로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처지를 감사하게 여기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능력(스펙 말고 스킬)을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서 사람을 조직의 부품 정도로 여기게 된 사회라지만
정말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을 홀대하는 조직은 없다.
그 '능력'을 홀대하고 '능력의 겉껍질'에만 정신이 팔린 개인들이 있을 뿐.


여러분, 프라이드를 좀 갖고 살자구요.
혹시 알아.. 그러다 보면 하루코처럼 시급 3000엔의 특A급 파견직이 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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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오픈캐스트에 소개되었습니다
리퍼러에 네이버 메인이 많은 걸 보면 메인에도 소개되었던 모양인데
메인에 뜬 건 캡쳐를 못 해서 아쉽지만T.T
어쨌거나 '한길의 일드 칸타빌레'에 소개되었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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