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프레지던트 scrap








※ 스포일러 있을 지도. 하지만 스포일러가 별 의미는 없으니 알아서 읽으세요






처음 제목을 보고 나는 막연히 아, 대통령과 관련된 영화겠구나. 라고 짐작했고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어째서 3명의 대통령이 등장하는가?
장동건이 대통령이라며? 그럼 한 명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세 명이 경쟁을 하나? 옴니버스 영화인가?
뭐 이런 상상을 하면서 상영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장진.... 아, 장진...... T_T




일단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알기 위해서는 오프닝 시퀀스를 주의깊게 봐야 한다지?
그래서 열심히 봤다.
오프닝 시퀀스에는 이순재가 분한 대통령과 영부인, 비서관들의 아침 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거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법을 바꿔 가면서까지 여기에 계속 있으려고 하는구만.
장 조리사가 해 주는 맛있는 요리를 먹으려고 말이야."

(기억에 의존한 거라 정확한 대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저런 내용)



하지만 그 때는 그 대사를 미처 주의깊게 생각하지 못 했다. 그저 아, 괜찮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하는데..
굿모닝 프레지던트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굿 프레지던트' 였다가 뒤늦게 '모닝'이 등장한다.
이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Good morning, President." 라고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단언하건대 대통령은 아니다. 본인이 본인에게 인사를? -.-
(장동건이 그런 대사를 읊긴 하지만)

그 말의 주체는 대통령의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경호실장, 청와대 조리사, 그 아래에 있는 보조 인원들...
그들은 아침이 오면 대통령을 향해 '굿모닝, 프레지던트' 라고 말한다.
나이 많은 대통령, 젊은 대통령, 여자 대통령.
임기가 바뀌고 그 어떤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도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똑같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대통령을 보필한다.
심지어 포스터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손은 대통령을 보살피고 있다.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에게 별 공통점은 없다.
그들의 정치 스타일이나 정책, 그런 것들은 서로 연결지점이 없이 뚝뚝 끊어져서 제시된다.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놓이는 사람들. 그들은 변화한다. 임기가 끝나면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런 대통령들과 대립하는 인물이 있다면 청와대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3번이나 바뀌고 비서진이 바뀌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장진은 진짜 주인공이야말로 그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뭔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바쁘게 동분서주하는, 때로는 해고의 위협에 두려워;하기도 하는 경호실장.
매일 아침 대통령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사.
그리고 그 조리사와 함께 요리를 준비하는 주방 보조들 말이다.


가장 높은 곳이라고 여겨지는 대통령.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이순재의 대사에서도 보이듯 대통령들은 마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은 임기가 끝나면 소멸된다.
그들이 그 자리에 앉고 싶게 만들고, 그들을 그 자리에 어울리게 만들어 주는 것은
대통령의 옆에서 그들을 보필하는 보통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엔딩크레딧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세 명의 각기 다른 대통령들이 모두 힘든 순간이 오면 주방으로 온다는 점도 그렇다.
그들의 대화는 참 뻔하게 감동적이고.... 그래서 나도 보면서 힘이 빠질 정도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뻔한 대화 자체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가볍다, 장진답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나 역시 영화 속에서 제시된 문제들이 너무 겉핥기 식으로 다뤄져서 답답함을 느꼈지만
사실 장진은 애초부터 텍스트 내부에서의 풍자엔 별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훈훈하고 감동적인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보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장치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그리 직설적이지만은 않은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그랬기 때문에 애초부터 풍자적인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감동적인 이야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대통령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상적인 대통령상에 대한 제시는 될 수 있어도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각기 다른 대통령들'이라는 단순한 에피소드적인 성격밖에 갖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참으로 싱겁다는 느낌을 받았고 한편으로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장진이? 장진인데? 장진이 이런 훈훈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물론 동막골도 그 동네 영화이긴 하지만 이건 제작이 아니라 각본/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내가 기대한 영화는 이런 게 아닌데???


그래서 상영관을 나오면서 계속 생각했다.
결국 장진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대통령도 결국은 사람이다'? 혹은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
아니면, '사실 (영화의, 혹은 정치의) 진짜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드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내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굿 프레지던트'가 아니라
'굿 프레지던트'에 모닝을 덧붙인 '굿모닝 프레지던트'인 것이 아닐까?
두 글자를 덧붙임으로서 완전히 다른 제목으로 변화시키는 그 퍼포먼스 자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주인공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런 대통령을 그 자리에 앉게 만드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부터
영화에서 제시되는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대통령상은 약간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대통령은 사람이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고 인간적이거나 불완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대통령에게 항상 해답을 제시하는 조리사는 대단한 권력을 갖춘 사람도,
대단한 학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요리사일 뿐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대통령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그들이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결국 이상적인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우리 평범한 국민들이라는 것이 장진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그러니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결론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가 될 수도 있고
'5년의 임기만 끝나면 떠날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라'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런데 참 재밌지 않은가.
대통령은 5년만 지나면 휙 갈아치워지는데 요리사는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역시 청와대 실세는 대통령이 아니라 요리사..........




어쨌든 재밌었다. 처음엔 '아 장진 감독 변했어..'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역시 장진' 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장동건의 코믹연기를 볼 수 있게 해 줬으니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건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없으려나? -_-;;
암튼 난 이렇게 계속 이리저리 곱씹어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좋다.
'주제는 이거다'라고 분명하게 소리치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판타지라고 내놓은 영화에 신랄한 패러디와 풍자를 기대하는 것도 좀 에너지 소모인 것 같고..
하긴 장진이니까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아무튼 사랑해요 장진 감독님..





아. 그리고 난 진짜 경호실장 아저씨 보면서 웃겨 쓰러질 뻔 했다.

1. 저 없이 대통령 각하를(호칭이 이렇게 되는 게 맞나?;)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들어가시게 하는 건 처음입니다.
2. 운전면허 갱신을 안 하셔서 지금 무면허 상태이신데요?


...아 역시 장진.. 다시 생각해도 웃기닼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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